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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오일쇼크의 역사와 2차 오일쇼크

 

1970년대, 산유국의 모임인 OPEC이 석유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유가는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이 시기 일어난 유가 급등을 ‘제1차 오일쇼크’라고 부릅니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4년간은 전 세계에 돌아다니는 돈 중 절반이 오일 달러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2차 오일쇼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970년대가 끝나가던 1979년과 1980년, 이란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일어난 두 번째 유가 급등이 바로 ‘제2차 오일쇼크’입니다.

 2차 오일쇼크의 배경을 알려면 이란의 이슬람혁명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친미 왕조국가였던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신정일치 국가가 되며 일어났습니다.

‘이란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혁명은 1978년부터 시작돼 1979년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 유가가 엄청나게 오르며 제2차 오일쇼크를 불러왔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73년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영·미 석유회사로부터 원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온 중동 국가는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돈이 쌓여갔기 때문입니다.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조금씩 올라가던 유가는 1970년대 중반 가격이 조금 떨어지며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중동 국가는 몇 년간 쏟아졌던 오일 머니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유가가 떨어지자 이미 커진 지출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통 경제성장은 물가상승을 동반합니다.

물건이 많이 팔리면 월급이 오르고, 월급이 오르면 회사는 더 비싼 물건을 만들어 팔고, 그것도 잘 팔리면 다시 월급이 오르는 인플레이션 선순환이 경제성장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고 왕족과 귀족들만 이익을 독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가 성장하며 물가는 오르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집니다.

중동국가가 원유 수출로 번 돈은 왕족이나 귀족 계층이 독점한 상태였습니다.

이란은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이런 현상이 심했고, 결국 왕조를 추방하고 나라 전체가 제정일치 사회로 돌아서는 종교혁명이 일어나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이때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이란은 하루 6백만 배럴 정도 생산하던 원유를 하루 2백만 배럴로 감산합니다.

그러자 배럴당 13달러 정도였던 원유가 30달러 후반까지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제2차 오일쇼크가 시작됐습니다.

 

 

1979년 2월 시작된 이란혁명은 1개월 만에 진정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원유를 다시 증산했음에도 불구하고 4배 이상 뛰어오른 유가는 그대로였습니다.

새 이란 정부는 굳이 유가를 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중동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표로 원유 생산량 감산과 고유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합니다.

이라크는 이란혁명이 자국으로 번질까 봐 무서워했습니다.

왜냐면 한 나라 안의 민족도 다르고, 종파도 크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1988년까지 8년간 지속됩니다.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역시 이란혁명이 중동에 인접한 소련의 연방국들로 번질까 봐 먼저 나선 것입니다.

이 전쟁은 1989년까지 10년이나 지속됩니다.

중동 지역에서 오래 지속된 전쟁은 국제 정세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소련의 멸망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제2차 오일쇼크의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원인과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